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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사회를 통하여 경제, 사회, 문화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준비하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갔다. 그러나 19세기의 양반 지배 체제는 세도정치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정치 체제로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였다.
회화에 있어서도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19세기에 그림과 글씨를 주도했다고 볼 수 있는 추사 김정희(1786-1856)는 그러한 경향을 보인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대적이라고 할만큼 청나라 문화에 관심을 보인 김정희가 화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발휘하면서 중국의 문인화 풍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리는 진경산수화보다는 풍경 속에다 문인화의 관념이나 이념을 불어넣는 것을 중시한 것이다. 김정희와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문인화가 유행하면서 독창적이고 사실적 그림으로서의 진경산수화 및 풍속화의 전통은 위축되고 말았다.
글씨에서도 그는 추사체로서 매우 유명하다. 그 글씨의 힘차고 격조 높은 느낌과 우수성에 대해서는 어떤 수식으로 평가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는, 한호(1543-1605), 이광사(1705-1777)로 이어지는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우리 글씨체의 맥을 끊은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어쨌든 그림과 글씨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그에 의해 또는 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 봉건 사회 해체기에 싹튼 진경산수화, 풍속화 등, 우리의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경향의 새로운 예술 활동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꺾여 버리고 말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민화는 19세기에도 더욱 발전하였는데, 봉건적 사회 질서를 극복하려는 민중들의 투쟁으로 봉건 양반 지배층의 문화는 복고적 경향으로 회귀함에 비해, 대응 문화로서 민중적 삶과 정서가 풍부하게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